옹이의 아름다움

이 성 보

 

며칠 집을 비웠는데 그 사이에 팽나무잎이 어우러졌다. 다잡는 계절의 변화가 놀라웠다.

내가 옮겨 심은 팽나무와 함께한 세월을 헤아리니 17년이다. 옮겨 심을 때 심하게 가지를 잘라내어 몰골이 말씀이 아니었던 팽나무였는데 용케도 상처를 잘 치유하여 부챗살 모양으로 가지를 펼친 그 위용이 자못 당당하다.

나무는 자라면서 가지를 만들어 낸다. 가지에서 또 가지가 생기고 잎이 무성해지고 마침내 우람하게 자란다. 세월 속에 그 가지는 더러 삭정이 된다. 삭정이는 옹이를 남긴다. 옹이는 목재의 흠이다. 옹이가 잘 아물면 아름다운 무늬가 되어 목재의 가치를 높여 주지만 잘못되면 몸통 속에 동공(洞空)을 만들어 큰 나무를 통째로 쓰러뜨리고 만다.

옹이 없는 나무가 없듯 세상사는 하나같이 상처투성이다. 흠결 없는 삶이 어디 있으리오만 흠결도 때로는 유익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경험은 지혜가 되고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 그리고 사랑이 되어 삶의 향기로 되살아난다.

아픔의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상흔이다.

아름다움은 '앓음다움'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해 보인다. 상처 때문에 아픈게 아니라 상처 덕분에 아름다움을 얻는 것도 있다. 바로 진주조개 이야기다.

진주조개의 아름다움은 조개의 속살에 생긴 상처 때문에 얻어진 것이기에 진주를 만드는 과정이 흥미롭다.

진주는 조개가 모래알에 상처를 입은 후 형성되는 유기질 보석이다. 조개가 먹이를 먹을 때에는 모래 등 이물질이 조개 속으로 들어온다. 이물질은 여린 조개속살에 상처를 입히게 되므로 다른 조개는 그것을 걸러낸다. 그러나 진주를 만드는 조개는 상처를 보호하고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몸 속에서 하얀 우유빛깔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그 화학 물질들이 상처를 동그랗게 계속 덮어 쌓아가면서 점점 층을 겹겹이 쌓아 진주가 탄생된다.

진주는 패각이 자개처럼 광택이 나는 조개만이 생성할 수 있다. 천연진주가 큰 형태로 만들어 지려면 약 3-5년 이상 걸리는데 0.5mm 두께의 진주에는 약 1천 겹 정도의 진주층이 형성되어 있다. 그만큼 진주는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몸에서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상처 입은 몸을 감싸면서 여인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진주로 승화된다. 진주조개는 외부의 자극을 많이 받을수록 더 영롱한 진주를 만들어 낸다. 진주조개에게 상처는 평생 흉허물이 되는 아픔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자신을 드높이기 위한 고통의 과정인 셈이다.

 

20세기 여성 패션에 혁신을 불러일으키면서 '샤넬'이란 패션 제국을 건설한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 코코(Coco)라는 별칭으로 전세계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녀에게는 남들보다 불행하고 고생이 심했던 깊은 상처가 있었다. 그녀의 상처를 두고 진주조개에 비유되기도 한다.

샤넬은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린 시절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는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병약한 어머니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가난과 싸웠다. 하지만 그 어머니마저 그녀가 12살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 자매는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기로 수녀원에서 자랐다. 18살에 보조양재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며 동생들을 보살폈다. 그녀는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토하면서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내 성공의 비결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맹렬하게 일하는데 있다"고 할 정도로 그녀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손이 붓고 굳어질 정도로 필사적으로 일했다. 그것이 '샤넬'이란 브랜드 못지 않게 그녀가 유명한 인물이 되게 한 이유였다. 혼신을 다한 노력과 아버지에 대한 노여움의 에너지 위에 자신의 꿈을 쌓아 전설의 향수 '샤넬 No.5'와 화려한 클래식 브랜드 '샤넬룩'을 창시하여 패션과 향장에서 세계굴지의 사업을 일구었다. 71년 파리의 리츠호텔에서 쓸쓸히 홀로 숨을 거둘 때까지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은 그녀는 생전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자신을 단련시켜야 하고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작업장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부채에 시달렸던 십 수년의 세월을 그런대로 버티어 왔다.

우스개로 '신불십년'이라 했더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신용불량 십 년이란 설명에 웃는 이가 더러 있었지만 따라 웃을 기분은 아니었다.

지난 4월 21일, 특허증을 받았다. 2008년 12월 12일 출원한 '석부작용 입석 및 그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증이 그것이다. 그날 나는 모처럼 활짝 웃었다.

지난날 어줍잖은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글의 내용이 어둡다고들 했다. 고단한 삶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었는가 싶어 죄스럽기만 했다.

극성으로 난을 하다 나처럼 삶이 피폐해진 애란인도 많지싶다. 하지만 좌절할 일도 아니다. 불행에는 용기있게 직면하는 것이 절망에 빠져있는 것 보다 훨씬 덜 고통스럽다. 불에 달굴수록 쇠는 더 단단해 진다고 하지 않던가.

성공한 사람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자생력을 키우는 과정은 조개가 아름다운 진주를 만드는 과정과도 흡사하다.

크고 깊은 상처는 그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강인한 인내심과 불굴의 열정을 선물해 준다.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들 듯 상처를 딛고 일어서자. 아무렴 사람이 조개만 못할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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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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